루벤스, 바로크 걸작전
2009. 2. 25. 16:21ㆍ여행,사진 그리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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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바로크 걸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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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표를 끈고 들어간게 원인이었겠지만....
입장료 12,000원 + 오디오 3,000원 = 15,000원
한참 오디오를 듣고 있는데...단체관람객들 앞에서 설명으 하는 도슨트..
설명을 재미있게 하시는 것 같고..
또한 오디오를 듣는 것 보다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무리를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근데 문제는 시간에 쫏기다보니...
중요한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나머지는 뛰어넘더군요... 시간은 7:00를 넘었고...
보지 못한 작품들을 보기위해서 잠시 뒤로 가려던 것을 관지하시는 분들이 막고서내요...
시간이 끝났다고...결국에는 다 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내요....
아쉽기도 하지만...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다보니 참 재미있었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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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폴 루벤스 :
피터 폴 루벤스는 부모가 망명해 있을 당시 독일 지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테스탄트 신앙고백으로 인해 안트베르펜에서 추방당했고, 루벤스는 10세 때까지 독일 쾰른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어머니 마리아 퓌펠링스 Maria Pypelinx는 세 아이들 발란디나 Balandina, 필립 Philipp, 피터 폴과 함께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갔다. 루벤스는 라틴어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마르흐에리테 데 링어 Marguerite de Ligne 백작 부인의 집에서 급사로서 사회 생활을 훈련 받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이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루벤스는 당시 안트베르펜의 3명의 대가들, 즉 토비아스 페르하흐트 Tobias Verhaecht, 아담 반 노르트Adam van Noort, 로마에 있던 페데리코 추카로 Frederico Zuccaro 의 제자 오토 반 페인 Otto van Veen 에게서 사사하였고, 1598년에는 루카스 조합의 책임자가 되기에 이른다. 이 무렵 루벤스의 작품들에는 당시 그의 스승이었던 오토 반 페인의 필체가 분명히 담겨 있다.
1600년 루벤스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8년간 체류하였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궁정화가를 구하고 있던 만토바 공작을 만나 궁정화가로 일하게 되었다. 루벤스는 이를 계기로 후원자와 고용주를 동시에 찾게 되었다. 1601년 루벤스는 처음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고, 1605년부터는 탁월한 고대 전문가이며 인문학자이자 철학자인 동시에 로마에서 법률 공부도 한 형 필립과 함께 한번 더 로마를 방문하였다. 1603년 루벤스는 만토바 공작이 스페인 왕에게 선물을 보내는 길에 동반함으로써,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레르마 Lerma 공작을 위해 작업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루벤스는 주로 예수회를 위해 대형 제단화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1608년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당시 브뤼셀에 주재하던 네덜란드 총독 알브레흐트 대공 Albrecht과 이사벨레 클라라 외이지니아 Isabelle Clara Eugenia에 의해 궁정화가로 고용되었다. 루벤스는 같은 해인 1609년 이사벨레 브란트 Isabelle Brant와 결혼하였고, 안트베르펜의 중심지에 위치한 자신의 자택 옆에 대규모 작업실을 짓기 시작했다. 루벤스를 유럽 전역에서 활약한 화가로 만들어 준 수많은 대작들 중에서 안트베르펜 교회의 제단화, 안트베르펜 예수회 교회의 장식용 그림, 파리의 마리 드 메디치를 칭송하는 연작 그림들, 이사벨레 대공비가 주문했던 마드리드의 수도원 데스칼카스 레알레스 Descalcas Reales의 태피스트리 초안 등을 꼽을 수 있다.
루벤스의 첫 번째 부인인 이사벨라 브란트가 죽은 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점차 공동작업자들에게 양도했으며, 그 후 이사벨레 대공비의 신뢰를 받던 그는 그녀의 평화 정치를 수행하는 외교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외교관으로 활동할 당시 영국 왕 찰스 1세와 스페인 왕 필립 4세를 만났는데, 이들은 훗날 루벤스에게 매우 중요한 의뢰를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런던 화이트홀 궁전의 천장화와 마드리드에 있는 왕의 수렵용 별장인 “축제 행렬의 문"의 장식용 그림이다. 루벤스는 1630년 당시 16세의 헬레네 프루멘트 Helene Fourment와 재혼한 후에 은퇴하여 개인 생활로 돌아갔다. 특히 메헬른 Mecheln과 브뤼셀 사이에 있는 헤트 스테인 Het Steen의 통치 및 소유권을 획득한 후, 루벤스는 그 곳에서 남은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루벤스가 작업한 마지막 대작은 그의 고향 안트베르펜에서 의뢰한 것으로, 새로 임명된 스페인 총독의 취임식을 위한 축제 장식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루벤스는 1640년 5월 통풍으로 사망했으며 안트베르펜에 위치한 자신의 교구 교회에 묻혔다.
http://www.korearube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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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표를 끈고 들어간게 원인이었겠지만....
입장료 12,000원 + 오디오 3,000원 = 15,000원
한참 오디오를 듣고 있는데...단체관람객들 앞에서 설명으 하는 도슨트..
설명을 재미있게 하시는 것 같고..
또한 오디오를 듣는 것 보다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무리를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근데 문제는 시간에 쫏기다보니...
중요한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나머지는 뛰어넘더군요... 시간은 7:00를 넘었고...
보지 못한 작품들을 보기위해서 잠시 뒤로 가려던 것을 관지하시는 분들이 막고서내요...
시간이 끝났다고...결국에는 다 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내요....
아쉽기도 하지만...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다보니 참 재미있었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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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폴 루벤스 :
피터 폴 루벤스는 부모가 망명해 있을 당시 독일 지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테스탄트 신앙고백으로 인해 안트베르펜에서 추방당했고, 루벤스는 10세 때까지 독일 쾰른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어머니 마리아 퓌펠링스 Maria Pypelinx는 세 아이들 발란디나 Balandina, 필립 Philipp, 피터 폴과 함께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갔다. 루벤스는 라틴어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마르흐에리테 데 링어 Marguerite de Ligne 백작 부인의 집에서 급사로서 사회 생활을 훈련 받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이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루벤스는 당시 안트베르펜의 3명의 대가들, 즉 토비아스 페르하흐트 Tobias Verhaecht, 아담 반 노르트Adam van Noort, 로마에 있던 페데리코 추카로 Frederico Zuccaro 의 제자 오토 반 페인 Otto van Veen 에게서 사사하였고, 1598년에는 루카스 조합의 책임자가 되기에 이른다. 이 무렵 루벤스의 작품들에는 당시 그의 스승이었던 오토 반 페인의 필체가 분명히 담겨 있다.
1600년 루벤스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8년간 체류하였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궁정화가를 구하고 있던 만토바 공작을 만나 궁정화가로 일하게 되었다. 루벤스는 이를 계기로 후원자와 고용주를 동시에 찾게 되었다. 1601년 루벤스는 처음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고, 1605년부터는 탁월한 고대 전문가이며 인문학자이자 철학자인 동시에 로마에서 법률 공부도 한 형 필립과 함께 한번 더 로마를 방문하였다. 1603년 루벤스는 만토바 공작이 스페인 왕에게 선물을 보내는 길에 동반함으로써,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레르마 Lerma 공작을 위해 작업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루벤스는 주로 예수회를 위해 대형 제단화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1608년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당시 브뤼셀에 주재하던 네덜란드 총독 알브레흐트 대공 Albrecht과 이사벨레 클라라 외이지니아 Isabelle Clara Eugenia에 의해 궁정화가로 고용되었다. 루벤스는 같은 해인 1609년 이사벨레 브란트 Isabelle Brant와 결혼하였고, 안트베르펜의 중심지에 위치한 자신의 자택 옆에 대규모 작업실을 짓기 시작했다. 루벤스를 유럽 전역에서 활약한 화가로 만들어 준 수많은 대작들 중에서 안트베르펜 교회의 제단화, 안트베르펜 예수회 교회의 장식용 그림, 파리의 마리 드 메디치를 칭송하는 연작 그림들, 이사벨레 대공비가 주문했던 마드리드의 수도원 데스칼카스 레알레스 Descalcas Reales의 태피스트리 초안 등을 꼽을 수 있다.
루벤스의 첫 번째 부인인 이사벨라 브란트가 죽은 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점차 공동작업자들에게 양도했으며, 그 후 이사벨레 대공비의 신뢰를 받던 그는 그녀의 평화 정치를 수행하는 외교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외교관으로 활동할 당시 영국 왕 찰스 1세와 스페인 왕 필립 4세를 만났는데, 이들은 훗날 루벤스에게 매우 중요한 의뢰를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런던 화이트홀 궁전의 천장화와 마드리드에 있는 왕의 수렵용 별장인 “축제 행렬의 문"의 장식용 그림이다. 루벤스는 1630년 당시 16세의 헬레네 프루멘트 Helene Fourment와 재혼한 후에 은퇴하여 개인 생활로 돌아갔다. 특히 메헬른 Mecheln과 브뤼셀 사이에 있는 헤트 스테인 Het Steen의 통치 및 소유권을 획득한 후, 루벤스는 그 곳에서 남은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루벤스가 작업한 마지막 대작은 그의 고향 안트베르펜에서 의뢰한 것으로, 새로 임명된 스페인 총독의 취임식을 위한 축제 장식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루벤스는 1640년 5월 통풍으로 사망했으며 안트베르펜에 위치한 자신의 교구 교회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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